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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47> 근대화의 색깔 ‘노란 샤쓰의 사나이’

[대중가요의 아리랑]<47> 근대화의 색깔 ‘노란 샤쓰의 사나이’

기사승인 2023. 07. 1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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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이 쏠려/ 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대중가요계의 새로운 물길을 트며 1960년대의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트로트의 물결이 넘실거리던 우리 대중가요계에 다양한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한국적인 토착화 과정을 통해 서민 가요로 자리잡은 트로트 계열의 대표곡이 '동백 아가씨'라면, 미8군을 모태로 한 새로운 가사와 리듬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팝 계열의 대표곡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였다. 또한 노랫말 속의 정서에서도 사회적인 변화를 시사하고 있었다.

대중음악평론가 장유정은 "'동백 아가씨'가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인 데 반해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임을 찾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의 자세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노란 샤쓰를 입은 사나이가 마음에 든다'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과 과묵한 모습에 마음이 끌린다'고 솔직히 말한 것이다. 여기서 1960년대 당시 인기 있는 남성의 이미지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의 대중가요와 달리 노래에 색채감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제목부터 '노란' 색깔을 강조하며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1960년대 세련된 도시 청년의 대명사로 만들어버렸다. 뒤따라 나온 가수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가 히트하면서 노란 샤쓰를 입은 청년과 빨간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서울의 달라진 모습을 상징했다.

패션 감각이 있는 멋진 젊은이들의 등장으로 서울은 자유와 청춘을 구가하는 활력 있는 도시로 변한 것이다. 전란의 회색빛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밝고 희망찬 도시로 거듭나려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유행은 시절인연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당초 허스키한 목소리의 무명가수 노래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물며 '수준 낮은 동요 같은 노래'라는 악평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5·16 군사정변이 노래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일소하고 국가의 재건 의지와 국민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군부 엘리트들에게 노래의 밝은 이미지와 경쾌한 리듬이야말로 기가 막힌 문화예술적 지원군이었다. 공영방송이 대국민 홍보용 노래처럼 계속 틀어대면서 음반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는 것은 물론 레코드 판매점에서는 노란 셔츠까지 끼워서 파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미국의 전형적인 컨트리풍 스타일에다, 당시 가요의 정석이던 1절·2절이 있는 유절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은유법보다 직설법을 택한 것 등도 파격적이었다. 1962년 프랑스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의 서울 내한공연 당시 이 노래를 우리말로 부르고 음반을 내면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과 동남아 일대에까지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960년대 한류 열풍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미8군 가수들의 일반 무대 진출 계기를 마련한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원래 느린 블루스풍 재즈였다. 이를 작사·작곡가 손석우가 경쾌한 트위스트풍으로 편곡한 것이다. 여기에 허스키한 보컬에서 뿜어 나온 한명숙의 호소력이 대중의 흥을 한껏 돋우며 한국 사회는 산업화의 힘찬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노래 한 곡으로 가요계의 정상에 올라선 한명숙은 동명의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최고의 시절을 구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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