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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49> 트로트의 부활과 시련 ‘동백 아가씨’

[대중가요의 아리랑] <49> 트로트의 부활과 시련 ‘동백 아가씨’

기사승인 2023. 07. 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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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동백 아가씨'는 노랫말의 운명적 비애가 시사하듯 오랜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불후의 명곡이다.

1963년 라디오 드라마 '동백 아가씨'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인기를 얻자, 이듬해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 주제가 작사 요청에 한산도는 사랑에 속고 기다림에 지친 여인의 한을 검붉게 멍이 든 동백꽃과 연계한 노랫말을 지었다. 그것은 섬 처녀와 서울 총각을 등장시킨 평범한 신파조의 타령만이 아니었다. 도시와 농어촌 간의 격차와 격리로 상실감에 젖은 사람들의 서러움을 대변하는 가사이기도 했다.

여기에 작곡가 백영호가 아름답고 애잔한 선율을 얹었다. 대중의 눈물겨운 마음을 대변하는 음악성을 발휘한 것이었다. 게다가 천부적인 호소력을 지닌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목소리가 누대에 걸친 고난과 억압 그리고 잦은 내우외환으로 가슴에 덧쌓인 한국인의 한을 달래고 해소하는 역할을 한 것이었다. 노래는 전쟁의 후유증과 가난의 서러움으로 한 서린 당대 서민들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한국 대중가요사의 신화적인 성공을 기록한 '동백 아가씨'는 그러나 한일 국교 정상화를 주도한 5·16 군사정권의 '왜색가요 사냥'이라는 역설적인 사냥감이 되고 말았다. 1965년 시작된 방송금지 처분과 음반 판매 중지의 사슬이 무려 22년간이나 지속된 비운의 명곡이 되고 만 것이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봉우리째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그리움에 지쳐서 빨갛게 멍이 든 동백 아가씨의 가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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