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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56> 섬처녀의 순정과 이별 ‘섬마을 선생님’

[대중가요의 아리랑] <56> 섬처녀의 순정과 이별 ‘섬마을 선생님’

기사승인 2023. 09. 2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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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섬처녀의 순정과 이별의 아픔을 이토록 절절하게 표현한 노래도 드물다.

'섬마을 선생님'은 동명(同名)의 인기드라마와 영화의 주제곡이었다. 1966년 KBS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로 히트했고, 이듬해 제작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마지막 이별 장면에 울려 퍼지면서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영화를 촬영한 곳은 인천시 옹진군 대이작도. 주요 무대였던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 인근에는 '섬마을 선생님' 노래비와 함께 '문희 소나무'가 있다.

섬처녀 역을 맡았던 여배우 문희가 서울로 떠나가는 총각 선생님이 탄 배를 멀리서 바라보며 남몰래 눈물지며 기대어 섰던 소나무다.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열아홉 섬처녀의 애절한 심사를 담은 그 소나무로 숱한 관광객의 발길이 모였다. 가수 이미자가 '섬마을 선생님' 노래를 부를 때의 나이도 스물네살. 해당화처럼 풋풋하고 화사한 시절이었다.

해당화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닷가 모퉁이에서 핀다. 그것도 여느 봄꽃들이 거의 사위어가는 늦은 봄에야 수줍은 듯 홍자색 꽃을 피운다. 해당화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듯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짙다. 거친 모래바람이 불어오거나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후 흰 모래밭에 후두둑 떨어진 붉은 해당화 꽃잎은 임 그려 울다 지친 여인의 각혈인 양 처연하다.

어여쁜 섬색시가 순정을 바친 섬마을에 해당화가 피고 지는 노랫말이 등장한 이유일 것이다. 비련의 로맨스 '섬마을 선생님'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와 더불어 가장 좋아했던 곡이다. 저음과 고음 사이를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애잔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목소리, 곡진한 가락에 실은 섬처녀의 순정한 화음은 듣는 사람들의 고단한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섬마을 선생님'은 1967년 문공부의 작곡상과 가창상을 받은 데 이어 무궁화훈장까지 수상했다. 그런데 같은 해 금지곡 처분을 받는 역설과 비운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당시 어떤 일본가요 한두 절과 음계가 같다는 표절이라고 했지만, 그 노래는 '섬마을 선생님'보다 나중에 나왔으니, 억지에 불과했다. 결국 '동백 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 등 이미자의 금지곡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로 돌아선 민심을 회유하려던 권력자들의 정치적 계산의 희생양이었다.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은 '동백 아가씨'에 이어 산업화에 성공한 도시 사람과 후미진 섬지역 사람들 간의 물리적·심리적 격차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짧은 만남 후에 멀리 떠나가는 서울 남성에 대한 한갓진 섬마을 여인의 소외감과 절망감의 토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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