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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빗물로 미끄러운 지하철역 계단…설치한다던 논슬립은 어디에

[르포] 빗물로 미끄러운 지하철역 계단…설치한다던 논슬립은 어디에

기사승인 2024. 07. 2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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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올해 서울 지하철역 38% 논슬립 설치 목표"
논슬립 설치 지지부진…"높은 시공 비용에 예산 확보 한계"
계단 맨 위·아래 일부만 설치돼…기존 논슬립도 닳고 들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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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서울지하철 5호선 목동역 지하 1층 대합실과 지하 2층 승강장 사이 층계에서 승객들이 논슬립(미끄럼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고 있다. /김서윤 기자
24일 오전 9시께 서울지하철 5호선 목동역에서 만난 직장인 A씨는 전철 승강장으로 바쁘게 내려가던 중 층계 한가운데서 갑자기 멈춰 섰다. 딛고 있던 계단 표면이 빗물로 미끄러워져 자칫 넘어질 뻔 했기 때문이다. 계단은 게다가 미끄럼방지시설인 '논슬립'이 설치돼있지 않아 위태로웠다. A씨는 "몇 년 전 겨울에도 눈이 녹아 미끄러워진 지하철역 계단에서 뒤로 넘어진 적이 있다"며 "당시 서울교통공사 측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여전히 논슬립이 설치돼있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목동역은 새벽부터 퍼부은 소나기로 지상에 위치한 출구부터 지하 2층까지의 전체 바닥과 계단 표면에 물이 흥건한 상태였다. 특히 대합실이 있는 지하 1층과 지하철 승강장이 있는 지하 2층을 잇는 계단은 총 26칸 중 맨 위와 아래, 두 칸만 제외하고는 논슬립이 설치돼있지 않았다. 출구 쪽 계단에만 유일하게 논슬립이 모든 칸에 설치돼있었으나 그마저도 닳거나 들떠 제기능을 못하는 상태였다. 이웃한 5호선 오목교역도 출구에서 지하 1층 대합실을 잇는 계단의 모든 칸이 논슬립 미설치 상태였다.

연이은 비소식에 물 마를 날 없는 서울 지하철역 계단에 논슬립(미끄럼 방지시설) 설치가 미비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미끄럼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낙상 사고 중 서울교통공사(공사)의 시설물 관리에 대한 귀책사유가 확인돼 실제로 치료비를 지급하는 경우는 올해 상반기에만 9건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총 25건, 2022년에는 22건으로 해마다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는 목격자 진술 확보·CCTV 분석·보험사 손해사정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최종 보상까지 이어진 사례에 한정한 집계다. 실질적 피해 건수는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 측도 무방비 상태로 시민들이 낙상 위험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지난해부터 서울 지하철역 모든 계단에 논슬립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공사에 따르면 2025년까지 서울 지하철역 내부 1707곳 가운데 지난해까지 385곳(전체 22.6%)에 논슬립이 설치됐다. 공사는 올해 말까지 263곳에 논슬립을 추가 설치할 방침이다.

사업 진행이 이렇게 더딘 것은 논슬립 설치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사업 최종 목표인 1707곳 시공에 드는 총 비용은 약 97억원이다. 당초 계획은 2023~2025년간 해마다 약 32억원씩 들여 매년 594곳을 시공해나가는 것이었다. 공사는 자체 예산으로 시공 비용 대부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시공 목표치를 계획 원안의 절반 이하 수준(약 44%·263곳)으로 감축했다. 지난해에도 원래 시공 목표의 65%(385곳)만 진행하는 데 그쳤다.

공사 관계자는 "경영난 등 구조적 문제로 원래 계획한 사업비를 전부 마련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수단을 총동원해 예산을 가능한 확보하고 되도록 많은 곳에 논슬립을 설치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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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서울지하철 5호선 목동역 내부 계단에 설치된 논슬립이 일부 들리거나 닳는 등 훼손된 상태다. 이날 내린 비로 목동역의 계단과 바닥은 전체적으로 물에 젖어 미끄러웠다. /김서윤 기자
한편 지하철역 계단 논슬립 전면 설치가 법으로 강제돼있지 않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관련 법규 확인 결과 건축법 시행령 등에서 논슬립 전면 설치 의무가 있는 것은 '다중이용 건축물'로서 일반철도 시설물은 여기 해당하나 지하철역은 도시철도 시설물로 별도 분류된다.

공사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고시 등 관련 자료를 찾아봤지만 지하철역 계단 논슬립 설치를 의무로 규정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며 "지하철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낙상사고 원인을 논슬립 미설치로 연결 짓긴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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