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대중가요의 아리랑] <44> 이별의 플랫폼 ‘대전 블루스’

[대중가요의 아리랑] <44> 이별의 플랫폼 ‘대전 블루스’

기사승인 2023. 06. 25. 17:4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우는 이별의 플랫폼/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대전 블루스'는 대전역에서 목포역으로 떠나는 호남선 야간열차에 실린 이별을 테마로 한 노래다. 안도현 시인은 '인생'이란 제목의 짧은 시에서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로 시작하는 '대전 블루스'는 호남선 분기점인 대전역을 배경으로 한 이별의 정한을 그리고 있다. 열차가 지향하는 곳이 전라남도 목포여서 그 정서적 무게감을 더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 대합실 청소를 끝낸 열차 승무원의 눈에 청춘남녀의 이별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두 손을 마주 잡고 한참이나 애절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플랫폼에 도착한 목포행 0시 50분 열차가 출발하려고 하자 남자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고, 여자는 열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철로 위에는 보슬비가 내렸다. '대전 블루스'의 노랫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가사를 쓴 당시 열차 승무원은 작사가 최치수로 후일 아세아레코드 사장이 된 인물이었다. 10여 년간 열차와 희로애락을 함께한 그는 기차역에 대한 애정과 추억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별의 서정이 담긴 노랫말은 작곡가 김부해의 손에 넘어갔고, 그는 가사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밤 기차를 타보기도 했다. 원래 최치수가 붙인 제목 '대전발 영시 오십분'도 '대전 블루스'로 바꿨다.

기차역이란 만남보다는 이별의 장소로 더 가슴에 와닿는다. '대전 블루스'는 자정 넘어 떠나는 완행열차가 중심 소재이다. 완행열차에는 서민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플랫폼은 그 최일선 공간이다. 여기에 끈적한 블루스 리듬과 애절한 가락을 얹어 이별의 슬픔을 고조시키고 있다. 노래를 부를 가수도 블루스 선율에 어울리는 안정애를 선택했다.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0시 50분'이란 노랫말도 압권이다.

'블루스'는 재즈, 탱고, 폴카, 맘보 등과 함께 들어온 미국의 대중음악 양식이다. 남북전쟁 후 남부의 흑인들이 노동의 고통과 영혼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부르던 노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가요의 한 장르가 되면서 '블루스' 이름을 붙인 숱한 노래를 탄생시켰다. 그중에서도 '대전 블루스'는 블루스곡의 대명사로 꼽혔으며 가수 안정애는 '블루스의 여왕'이 되었다. 노래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대전 블루스'는 후일 여러 유명 가수가 리메이크했지만, 이 노래가 대전역을 상징하는 전설로 남게 된 것은 1980년대 가왕 조용필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타면서였다. 적잖은 사람들이 노래를 조용필이 처음 부른 것으로 알만큼 대히트한 것이다. 1950년대 중반 대전역에서 0시 50분에 출발하던 목포행 제33열차는 사라지고 없지만 '대전 블루스' 노래는 남아 이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시가 있는 밥상'의 작가 오인태 시인은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다'고 했다. '기차는 견딜 수 없는 육중한 무게로 와서는 가슴을 철컥철컥 밟고 어딘가로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대전발 영시 오십분 호남행 열차도 그랬을까. 역(驛)순례 시를 쓰며 삶의 종착역인 '하늘역'으로 떠난 박해수 시인은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고 했다. 노래 한 곡으로 대전역은 그리운 사람들의 출발점이자 마침표가 되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